전시 하이킹

메종 투 메종 2024: 모르는 한국

form-hiking 2024. 9. 10. 20:45

- 메종 투 메종 2024: 모르는 한국

- 정동1928아트센터, 2024.8.30~9.6

- 글 발행일 이전 종료 전시

 

○ 《메종 마리끌레르》 잡지사가 주최한 전시. SNS에서 소식을 접했는데, 어떤 전시인지 궁금했다. 기본적으로는 가전, 가구, 생활 잡화 브랜드의 제품과 미술품을 한 공간에 배치해서 쇼룸처럼 보여주는 콘셉트. 
○ 미술품으로는 고가구, 나전공예품, 목공예품, 도자기 등의 고미술품과 이우환, 이수경, 이배 작가 등의 평면과 조각 작품이 있었다. 
○ 고미술품 중에서 처음 보는 종류의 것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조선철(朝鮮綴)과 지직화(紙織畫)라는 것인데, 조선철은 깔개, 담요, 휘장 등으로 쓰인 직물 공예품이고, 지직화는 공예 기법으로 만들어진 회화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공예 쪽이야 워낙 모르는 것이 많으니 그렇다 해도, 고서화는 그래도 많이 보러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것이 있어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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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보니 2020년에 지직화를 소개하는 논문이 한 편 나왔다. 현전하는 작품이 30여 점 정도이고, 그마저도 대부분 개인 소장품이라 박물관 전시 같은 곳에서 자주 보기는 어려웠던 듯하다. 아직 연구도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고.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일본에 18세기 무렵 전파된 것으로 추정했다. 
○ 제작 과정이 재미있다. 날실과 씨실을 교차시켜 직물을 만들 듯이 종이로 날실과 씨실을 만들어 교차시켜 가며 만든 그림(혹은 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채색까지 한 다음, 일정한 간격으로 종이를 세로로 잘라 날실을 만든다. 그리고 씨실 역할을 할 길게 자른 종이(보통 백지를 많이 쓴다고 함)를 하나씩 날실 사이사이로 통과시킨다. 이후 화면에 추가로 색을 칠하거나 붓을 대어 작품을 완성한다. 
○ 끊어지기 쉬운 종이를 재료로 삼으니 실로 하는 작업보다 훨씬 번거롭고 까다로웠을 것이다. 당연히 보통의 서화를 제작하는 작업과 비교해도 몇 배로 수고스러운 일이다. 굳이 왜 그랬을까.             
○ 씨실로 백지를 쓴 상황을 가정하면, 채색된 원래의 화면 중간 중간에 흰색이 섞이는 효과가 나기 때문에, 전체적인 화면의 채도가 낮아지게 된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화면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그림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체크무늬로 이루어진 독특한 표면의 화면이 드러난다. 자수 작품에서도 그런 점을 느꼈는데, 지직화는 훨씬 더 픽셀 아트와 유사한 느낌을 자아낸다. 디지털 그래픽과 같이 정돈되고 깔끔한 인상이다. 
○ 현전하는 작품 수로 볼 때 널리 유행하진 못한 듯하지만, 이전 시기와 비교해 다양한 미술품이 제작되고 더 폭넓게 유통되었던, 달리 말해 새로운 시각적 감상물에 대한 열망이 존재했던 조선 후기의 경향이 이러한 작품의 제작을 촉진한 듯하다. 고미술을 접할수록 과거의 사람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https://www.maisonkorea.com/maisontomaison2024/

 

참고: 김수연, <회화와 직조의 결합, 紙織畫 연구>, 《미술사학연구》 306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