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묵별미(水墨別美): 한 · 중 근현대 회화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4.11.28~2025.2.16
- 글 발행일 이전 종료 전시
○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이 공동으로 개최한 전시. 작가 145명(한국 69명, 중국 76명)의 작품을 걸었으니, 전시 공간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작품 밀도가 꽤 높았다.
○ 두 나라 작품을 섞어서 전시한 것은 아니고, 아예 중국 작품 따로, 한국 작품 따로 공간을 나누고, 각 나라 작품을 시대 기준으로 한 번씩 더 나눠 4개 전시실에 작품을 배치했다.
○ 근현대기는 수묵화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전통 회화가 큰 변화 없이 수 천 년간 유지해 온 전통에 커다란 균열이 간 시기라고 할 수 있음. 근현대기 두 나라 주요 작가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동시에 양국에서 수묵화가 전통에서 벗어나 어떻게 변화를 모색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전시의 포인트가 됨.
○ 물론, 교류전으로 기획된 전시인 만큼 20세기 이후 수묵화의 변화상을 정치하게 확인하기는 어렵고, 두 나라의 변화상을 비교하기도 쉽지 않다. 각국의 작품을 2개 전시실에 나눠 배치할 때 적용한 시대 기준도 각기 다르고 양측이 전시작을 선별한 기준도 달랐던 듯. 한국 측에서는 최근작의 경우 설치 작품이나 혼합매체를 사용한 작품 등 수묵화가 아닌 작품도 꽤 많이 나왔고, 중국 측에서는 상대적으로 수묵이라는 매체 기준에 좀 더 충실하게 작품을 선별함.
○ ‘수묵별미’라는 전시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사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묵화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작품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특히, 한국 현대 작품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 수묵화가 아닌 작품도 많았고, 재료 정보를 가리고 본다면 수채화나 유화로 인식할 작품도 많았음.
○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근대기를 거치면서 수묵을 주재료로 삼은 전통 회화는 많은 비판에 시달림. 한국의 경우 전통 화가들이 현실의 풍경을 직접 보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옛 그림을 모방하거나 양식화된 이미지를 반복해서 그린다는 점이 가장 큰 비판의 요지 중 하나였고, 중국의 경우 여기에 더해 사회주의의 대두와 더불어 전통 회화가 타파해야 할 구습으로 치부되면서 많은 수난을 겪음.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던 수묵화를 사회주의 선전과 어떻게 연결할지도 전통 화가들에게 시급한 과제로 대두됨.
○ 먹이라는 매체를 사용한 회화가 동아시아 전통 회화 예술의 거의 전부라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절대적인 지위를 유지해 온 만큼, 근현대기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전통 회화에 관한 담론과 화가들의 실제 제작 관습은 공격적이면서도 거센 도전에 직면함.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의 배면에는 그러한 도전에 따라 발생한 동아시아 회화 전통의 거대한 전환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음.
○ 꼭 이와 같은 미술사적 의미를 찾지 않아도, 가오졘푸(高剑父), 장다쳰(张大千), 쉬베이훙(徐悲鸿), 치바이스(齐白石), 푸바오스(傅抱石), 리커란(李可染)과 같은 중국의 근현대 수묵 대가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특별한 기회였다고 할 수 있을 듯. 이들의 작품 외에도 기량이 출중한 화가들이 그린 수묵 작품이 대거 나온 전시이다 보니 재미있게 봤다.
○ 개인적으로 기예(技藝)로서의 회화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수묵화를 볼 때도 그런 면에 집중해 즐긴다. 오랜 시간 반복적인 수련으로 도구와 매체의 활용에 통달한 화가들의 화면에는 상투적일지라도 강렬한 매력이 있고, 매력의 범주도 넓다. 치밀하거나 허술해서, 말쑥하거나 과장스러워서, 노골적이거나 의뭉스러워서 등등.
○ 수묵화를 다루는 전시나 담론을 보면, 먹과 수묵화가 지나치게 물신화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배경과는 무관하게 먹을 활용하는 작가도 많지만, 전통, 민족, 국가, 정신과 같은 개념과의 결합은 수묵화를 다루는 담론이나 화가들의 언술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럴수록 수묵화를 비롯한 전통 회화는 고립될 수밖에 없을 텐데, 가까운 시일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런 고리를 끊는 전시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240307000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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