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하이킹 2

세운상가, 신기루는 사라지고

마음먹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공중 보행로를 따라 걸으면서 세운상가(정확히는 청계상가, 대림상가, 진양상가 등을 포괄하는 세운상가군)를 둘러보기로 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건물 측면에 설치된 공중 보행로를 걷다 건물 안으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저층부의 상점가로 들어선다. 오밀조밀 모인 상점들을 지나 건물의 남쪽 끝까지 가 계단을 오른다. 예전에는 주거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주로 사무실로 쓰이는 상층부의 아파트 구역으로 진입해 다시 건물의 북쪽 끝까지 걸으며 중정 공간을 지난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다가 계단을 내려와 공중 보행로로 돌아온다. 계속 걸으며 같은 여정을 반복한다.   멀리서 보면 세운상가는 각진 기차와 같은 모양이다. 다양한 크기의 직육면체 블록을 쌓아 만든 것 같은..

유물 하이킹 2024.10.18

종묘에서

이야, 덥다. 더위가 절정으로 향하는 계절인데 해가 뜬 시간을 피하지 못했다. 종로 거리에서 바라보면 종묘로 향하는 길은 물줄기처럼 부드럽게 휘어 있다. 사정없이 파고드는 햇살을 피해 저벅저벅 곡선을 걸어 다가간다.  번잡한 종로의 공기를 뒤로 하고 외대문(外大門)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왕과 세자, 신(神)이 가는 길이 따로 있다. 고민하다 아무런 함의가 없는 흙바닥을 밟는다. 나무, 새 소리, 가벼운 바람, 길을 따라 트인 시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 분주히 행선지를 찾는 관광객의 시선. 아직 일상의 열기를 떨구지 못했는데 다른 세계로 훅 떠밀려 들어온 기분이다. 2024년 8월 현재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온전히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정전(正殿)의 정면을 마주하는 일은 한국 유물의 조..

유물 하이킹 202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