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덥다. 더위가 절정으로 향하는 계절인데 해가 뜬 시간을 피하지 못했다. 종로 거리에서 바라보면 종묘로 향하는 길은 물줄기처럼 부드럽게 휘어 있다. 사정없이 파고드는 햇살을 피해 저벅저벅 곡선을 걸어 다가간다.
번잡한 종로의 공기를 뒤로 하고 외대문(外大門)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왕과 세자, 신(神)이 가는 길이 따로 있다. 고민하다 아무런 함의가 없는 흙바닥을 밟는다. 나무, 새 소리, 가벼운 바람, 길을 따라 트인 시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 분주히 행선지를 찾는 관광객의 시선. 아직 일상의 열기를 떨구지 못했는데 다른 세계로 훅 떠밀려 들어온 기분이다.
2024년 8월 현재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온전히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정전(正殿)의 정면을 마주하는 일은 한국 유물의 조형미가 선사하는 압도적인 시각 체험으로 첫손에 꼽힐 만하다. 천천히 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 정전 남문(南門)에 들어서면 눈앞의 세상이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거대한 지붕이 오만 가지 일로 출렁이는 세상을 고르게 누르면, 폐 안의 공기까지 새어 나와 작은 탄성으로 이어지곤 했다.
월대는 보는 이를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고층 빌딩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전이 위엄을 갖추도록 한다. 관람객과 정전 사이에 자리 잡은 월대가 남문 쪽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뻗어 가기 때문에, 정전에 가까이 가려는 관람객은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감각으로, 정전은 한층 높은 곳에 있는 신전이 된다.
영녕전(永寧殿)은 정전과 비교해 작다. 건물의 형상이 시원하게 수평으로 펼쳐지는 데서 오는 조형미도 정전만 못하다. 하지만 좀 더 오랜 시간 머무르는 게 되는 건 이쪽이다. 정전이 도심 한복판에서 조용히 오라를 뿜는 신전이라면, 영녕전은 산자락에 안긴 은밀한 신당이다. 구역 삼면을 에두른 나무들은 뭉게구름처럼 부드럽게 영녕전이 포함된 풍경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에 풍경이 움직인다. 시간이 멈춘다. 모두 가만히 서서 짧은 황홀을 누린다.
정전과 영녕전이 처음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진 건 아니다. 종묘는 1395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9년에 다시 지어졌다. 이후에도 개축과 증축이 이어졌다. 정전과 영녕전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본래 왕과 왕비가 죽은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주를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또 영녕전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왕조가 계속됨에 따라 모셔야 할 신주가 늘다 보니, 정전과 영녕전은 몇 차례 좌우로 공간을 늘렸고, 지금처럼 가로로 긴 형상을 띄게 됐다. 종묘 건축물의 조형미를 대표하는 속성이 미적 지향과는 큰 관련 없이 형성된 셈이다. 종묘를 설계한 사람이나 수많은 개축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많은 유물이 그렇듯, 지금 종묘에서 만나는 풍경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잘 짜인 계획이나 조형 의지로 빚어진 결과인지 가름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무명인들의 행위와 우연, 자연, 시간 따위도 함께 작용한 끝에 어떤 유물의 형상이 우리 눈앞에 도달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그것의 아름다움이나 조형미와 관련해서는, 이를 곧바로 민족이나 국가, 지역과 같은 공동체의 문화적 성취나 유산으로 환원하는 일을 저어하게 한다. 그러한 연결이 불가능하거나 꼭 그른 것은 아니지만, 한 유물과 관련된 서사에서, 현대의 삶에 좀 더 많은 영감을 줄 재료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종묘의 주인이 화려한 성상(聖像)이나 세련된 조형물이 아니라 밤나무로 된 작은 신주라는 사실은 공간의 질박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위가 둥그스름한 직육각형 모양의 신주에는 혼이 드나들도록 작은 구멍을 뚫었고, 신주에 담긴 영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정보를 단정한 필치로 적었다. 장식은 없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위해 필요한 건 모자람 없이 갖췄다. 죽음 뒤에 필요한 공간이 종묘의 신주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의미로든 삶을 더 대수롭지 않게 대해도 괜찮겠다.
해설사에게 들은 사실인데, 조선 시대에 왕이 죽으면 궁궐에서 우선 삼년상을 치른 뒤에 종묘에 신주를 봉안했다고 한다. 종묘에 봉안되는 과정에서 세속의 인간은 신격을 갖춘 존재로 전환된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형제자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연인. 그런 사람은 여기 없다. 남은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들의 눈에도 빈틈없이 단정한 종묘의 아름다움이 들었을까. 외대문을 나서며 뒤를 돌아본다.
2024년 7월,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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