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하이킹

세운상가, 신기루는 사라지고

form-hiking 2024. 10. 18. 18:55

마음먹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공중 보행로를 따라 걸으면서 세운상가(정확히는 청계상가, 대림상가, 진양상가 등을 포괄하는 세운상가군)를 둘러보기로 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건물 측면에 설치된 공중 보행로를 걷다 건물 안으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저층부의 상점가로 들어선다. 오밀조밀 모인 상점들을 지나 건물의 남쪽 끝까지 가 계단을 오른다. 예전에는 주거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주로 사무실로 쓰이는 상층부의 아파트 구역으로 진입해 다시 건물의 북쪽 끝까지 걸으며 중정 공간을 지난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다가 계단을 내려와 공중 보행로로 돌아온다. 계속 걸으며 같은 여정을 반복한다.  
 
멀리서 보면 세운상가는 각진 기차와 같은 모양이다. 다양한 크기의 직육면체 블록을 쌓아 만든 것 같은 4개의 건물이 남북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다. 내부 구조에서도 곡선의 요소를 찾기 어렵다. 중정 공간 역시 직사각형 형태로 뚫려 있다. 세운상가를 둘러보는 여정의 동선도 수직과 수평을 오간다. 미로찾기 게임판에서 직선을 그어 나가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걸었다. 둘러볼 것이 많아 마음이 급하다.  
 
이런 것들이다. 묵은 때로 거뭇한 테라초 바닥, 윤이 나는 나무 손잡이, 표지판에 적힌 예스러운 폰트의 문구, 화분들, 반쯤 열린 사무실 문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실내, 재질과 색상이 각기 다른 문들, 복도에 쌓여 있는 상자, 다양한 상호가 적힌 상점과 사무실의 현판, 실내에 놓인 실외용 벤치, 노출된 배관, 중정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는 햇빛, 불 켜진 경비실의 빈 의자.
 
전자부품이나 전자기기를 취급하는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상점가는 한산했다. 손님은 없고 상인들만 눈에 띈다. 평일 오후라 더 그럴 것이다. 상층부 사무실 영역에는 배달 인력이 가끔 오간다. 상점이든 사무실이든 빈 곳이 많지는 않다. 업체의 영업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화훼업 매장이 입점해 있는 진양상가 쪽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활기가 돈다. 손님은 없어도 상인들이 분주하다. 빠른 손놀림으로 꽃가지를 다듬는 사람, 큰 목소리로 주문 전화를 받는 사람.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요란하게 수다를 떤다. 인현상가와 진양상가 상층부에는 거주민이 많은 듯했다. 조용한 복도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울린다. 배회하기 조심스러워 발걸음을 돌렸다.
 
리모델링을 거친 삼풍상가와 호텔PJ 건물을 제외하면 많이들 낡았다. 관리가 전혀 안 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많은 이의 일상이 흘러간다. 별스러운 사람이 모였거나 어수선한 일이 벌어지는 곳은 아니다. 1968년, 서울 한복판에서 출발한 거대한 기차가 지금도 천천히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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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그런 얘기를 들었다. 이곳에 부자들만 살았다고. 연예인과 유명 인사도 많이 살았고. 그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이미 세운상가는 쇠락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 과거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건물 한 동이 철거되기 전이기 때문에 세운상가는 도로에 바로 인접한 곳까지 거대한 입구를 내밀고 있었다. 허름한 콘크리트 건축물로서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만큼, 속에 묻힌 영화는 더 흐릿했다. 
 
1970년 《경향신문》은 서울의 새 풍속도를 소개하는 연재 기사를 게재하면서 아홉 차례에 걸쳐 세운상가를 다뤘다. 기사에 등장하는 세운상가는 단순히 부자나 유명 인사가 살았던 곳이 아니다. 기사는 세운상가를 '도시 속의 도시'라고 칭했다. 독자적인 자급 기능을 갖춘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운상가는 당시의 서울과는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세계였다.
 
그곳에는 1,735개의 점포, 현대자동차 본사를 비롯한 140개의 사무실이 있었다. 726가구가 입주한, 시민아파트 16개 동 규모의 주거지이기도 했다. 건물 옥상에는 작은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고, 다방, 미용실, 기원, 당구장, 양식당과 치킨집 등 각종 음식점이 입점했다. 예식장, 교회, 신학교, 은행, 병원이 들어섰고, 한때는 국회 사무처에서 건물 한 동 5개 층을 통째로 빌려 의원들의 사무실을 뒀다.* 
 
700평 규모의 대형 슈퍼마켓, 현대의 피트니스 센터와 유사한 미용체조실, 여성 전용 고급 사우나, 2개의 실내 골프장, 볼링장과 같이 부유한 사람들이 새로운 생활 양식을 누리던 공간이 즐비했다. 세운상가의 업장은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으리으리하고 새로웠다. 기사에 비친 세운상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선망, 질시의 대상이자 1970년대 초 서울 사람들의 세속적인 판타지를 구현하는 존재다. 크고 깨끗한 공간에서 새 문물을 누리며 여유롭고 편하게 즐기는 삶.
 
서울 한복판 판자촌에 남북으로 길이 1km에 달하는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부터가 그랬지만, 세운상가에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밑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온갖 상상력이 투영된 듯하다. 1960년대 말 서울시가 세운상가 옥상 공원 한 곳에 사립 초등학교를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교육청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초기 계획의 상당수가 실현되진 못했지만, 인간의 의지에 따라 도시라는 공간이 얼마나 큰 폭으로 변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세운상가에서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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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전성기를 누린 세운상가는 고급 주거지에서 안 파는 것이 없는 전자 제품 상가로 변신했고, 종국에는 온갖 불법 복제물이 유통되는 노후 상가가 됐다. 이미 90년대에 세운상가를 헐고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 축을 재건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무렵 세운상가의 시간은 멈춘 것 같다. 판타지든 상상력이든,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낡은 건물 안을 걷는다. 
 
대림상가 남쪽 입구 외벽과 옥상 공간 외벽에는 작가 김영주(金永周, 1920~1995)가 만든 대형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접시, 화분, 도기 파편 등을 붙여 기하학적인 문양을 표현한 입체 벽화다. 입구 외벽에 설치된 것은 도로 건너편에서 멀찍이 떨어져 봐야 하지만, 옥상에 설치된 벽화는 가까이서 살필 수 있다. 색은 바랠 대로 바랬고 파손된 곳이 많다. 벽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특이한 건물 장식 정도로 여겨 관심 두지 않았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사진 몇 장을 찍고 건물 안으로 돌아와 다시 계단을 올랐다(옥상 공간이 건물 최상층에 있지 않다). 12층 정도였을까. 계단을 올라 반대편을 바라보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철제 계단으로 이어지는 출입구가 나 있는데, 문이 열려 있어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왔다. 네모난 출입구가 액자 프레임의 역할을 해, 부드러운 빛 너머로 좀 전에 본 옥상 벽화의 일부가 단정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출입구 주변에는 철제 캐비닛과 잡동사니, 화분이 놓여 있고 벤치가 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잠깐씩 앉아서 밖을 보는 모양이다. 잠시 멈춰 벽화를 본다. 특별히 꾸미지 않은 공간에 느닷없이 누군가 무늬를 아로새긴 것 같다. 계단을 올라와 그 무늬와 마주쳤을 때, 세운상가의 시간이 잠깐 움직인 듯했다.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장면을 무심히 지나치거나, 여기서 걸음을 멈췄을까 생각했다. 문밖에서 도시의 소음이 아렴풋하게 들려온다.
 
2024년 9월 

 

* 참고: <서울┈ 새風俗圖(풍속도) (11) 都市(도시)속의 都市(도시) 卋運商街(세운상가) [1]>, 《경향신문》, 1970년 10월 21일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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