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하이킹

반화(盤花), 상서로운 마음

form-hiking 2026. 8. 25. 18:45

- 덕수궁 돈덕전 
- 2026.6.3~8.30
 
당분간 한국에서 열리는 공개 전시에서 이 이상의 공예품을 실견할 기회가 있을까 싶다. 원본이 아니라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전시물의 가치를 떨어트리진 않는다. 눈이 호강한다는 말을 실감할 기회. 
프랑스와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 19세기 말 고종이 프랑스 대통령에게 외교 선물로 분경 공예품을 보냈고, 해당 작품은 현재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이 소장했다. 전시장에서 복제품을 보면 알겠지만, 워낙 파손 위험이 큰 작품이라 한국으로 원본을 가져오진 못했고, 대신 옥공예 장인(김영희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에게 의뢰해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게 된 것.
분경은 작은 화분 같은 곳에 실제 식물이나 돌, 공예 재료 등을 활용해 산과 숲, 들판, 계곡과 같은 자연 경관을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고종이 프랑스에 보낸 분경 공예품은 두 점이 세트를 이루고 있다. 하나는 소나무, 하나는 측백나무를 중심에 놓고, 풀과 꽃 등으로 주변을 꾸몄다. 높이 각 47cm, 42.5cm, 너비 각 23cm, 24cm이니 각각이 중소형 화분 정도의 아담한 크기이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나무 두 개는 대추나무를 도금해 만들었다. 연옥과 백옥, 홍수정, 산호를 가공해 각종 꽃잎을 만들고, 물총새의 깃털로 덩굴 잎과 물망초를 만들었다. 소뿔로 패랭이꽃의 꽃술을, 물소 뿔로는 난초의 꽃대를 만들었다.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풀에 쓰인 것은 거북이 등껍질이다. 황동으로 만든 꽃줄기는 비단실을 나무 몸통에 감싸 고정했다. 일부만 서술해 본 것이다. 제작자는 이런 식으로 온갖 재료를 활용해 자연물의 요소 하나하나를 솜씨 좋게 재현하고, 두 손으로 모아 쥘 수 있는 황동 그릇 안에 상서로운 동산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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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조명 아래 빛나는 아름다운 공예품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크고, 작품의 세부를 뜯어보며 자연을 재현하는 데 쓰인 세공 기술과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도 있다. 분경 작품은 일종의 미니어처라고 할 수 있다. 미니어처는 세계의 일부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어쩌면 소유할 수도 있는 존재로 탈바꿈시켜,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그 앞에 선 우리를 신적인 존재로 고양한다. 여러모로 관람객을 매혹하는 요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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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


고종이 프랑스에 분경 공예품을 보낸 데는 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유사한 작품을 제작한 사례가 알려진 바 없고, 전근대 한반도 지역에서 분경 공예품 자체가 얼마나 제작되었는지 불투명하다. 도록에 실린 글을 보니 원본 작품이 분경 공예 문화가 발달한 청나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시 제목에 쓰인 ‘반화’라는 단어도 예전부터 통용되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본 작품을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장인에게는 복제품을 만드는 일이 무척 높은 난도의 작업이었을 듯하다. 원본을 만든 기술이나 기법 중 알 수 없는 것이 꽤 많았을 테니, 복제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과 품을 정말 많이 들였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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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면 먼저 2층으로 올라가 인트로 섹션과 실제 작품을 보고 1층으로 다시 내려오도록 전시 동선이 설계되어 있는데, 장인 인터뷰 영상 등 반화 제작 과정 관련 콘텐츠는 가장 마지막 순서로 1층에 배치되었다. 2층에서 실제 작품을 보기 전에 1층 전시를 먼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수고롭기 그지없는 제작 과정을 이해하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8월 30일(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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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화훼 문화와 분경 공예품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의 상징성을 소개하는 섹션


    
도록 및 리플릿 파일을 공개했다. 
https://royal.khs.go.kr/ROYAL/contents/R305000000.do?schGroupCode=dsg&schGroupCodeNm=%EB%8D%95%EC%88%98%EA%B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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