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퍼키스: 70년의 시선
- 류가헌 갤러리, 2025.12.23~2026.1.11
- 글 발행일 이전 종료 전시
○ 미국 사진가 필립 퍼키스의 사진전. 회고전 성격으로 1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 개막 한 달여 전에 작가가 타계했다.
○ 필립 퍼키스는 미국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오랫동안 재직했다. 한국에는 200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으로 기억하는데, 필립 퍼키스에게 사사한 박태희 작가가 번역한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출간이 중요한 계기일 듯하다. 박태희 작가는 이후에도 꾸준히 출판 등의 활동으로 한국에 필립 퍼키스의 작업 세계를 알리는 일을 해왔다. 한국에서는 그의 사진 못지않게 사진 작업에 관련된 태도나 철학이 회자해 왔고, 덕분에 그에게는 사진 교육자이자 그루의 이미지가 형성된 것 같다. 2008년쯤에 <사진강의 노트>를 읽고 작가의 사진집 <The Sadness of Men>을 구해서 본 기억이 있는데, 이번 전시 소식을 접하면서 오랜만에 작가의 이름을 다시 들었다.




○ 전시작은 모두 흑백 사진이고, 사이즈와 액자도 동일하다. 작가가 일상이나 여행지에서 마주한 장면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제목은 따로 없다. 작가는 초점 거리가 고정된 단렌즈를 사용했고(사진가의 줌렌즈 사용에 비판적이었다), 촬영한 모든 사진은 자신의 암실에서 직접 현상하고 인화했다.
○ 다른 사진가와 비교해 활용할 수 있는 표현 요소를 스스로 상당 부분 제한한 셈인데, 동시에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요소는 극히 정밀하고 세심하게 부렸다. 빛과 그림자, 색의 톤과 질감, 구도, 형상, 피사체 사이의 상호작용과 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실재하는 세계를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사진이라는 매체로 추상적이면서 시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능했다. <사진강의 노트>에 인용된 ‘명확하게 표현된 사실만큼 신비로운 것은 없다’는 사진가 게리 위노그랜드의 견해를 고유한 방식으로 증명했다.




○ 작가는 피사체를 상징이나 은유의 수단으로 쓰는 것을 경계했다. 디지털 기술을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대형 사진이나 합성 사진이 만연한 현대 사진계의 조류를 사진 예술이 가야 할 방향으로 보지 않았다. 보는 행위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고, 내면의 무언가와 외부의 무언가가 만나는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고 설명했다.
○ <사진강의 노트>에 소개된 그의 사진론은 현대 사진계의 복잡한 담론이나 조류와는 거리를 두었고, 사진 이론이나 예술 이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사진강의 노트> 한국어판에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이란 부제가 붙은 점에서 알 수 있듯,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삶을 대하는 태도로 치환될 여지가 존재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사려 깊게 관찰하고, 사용하는 매체의 본질이 무엇인지 오랜 시간 숙고하며, 자기 손으로 직접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통제하길 고집하는 사진가의 평소 삶이 어떨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작업이나 삶을 대하는 철학이 얼마 전 전시를 통해 알게 된 나카무라 요시후미와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 그의 사진론이 사진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현대 예술계가 선보이는 다양한 층위의 미학을 포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세계가 간결한 언어로 이루어진 만큼, 담아 내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글에서 사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정연한 세계를 구축했고, 혼란한 세상의 단면에서 정제된 이미지를 추출했다. 그의 사진은 늘 현실과 환상, 감각과 이성 사이에서 불안한 균형을 이뤘다.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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