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하이킹

보통이라서 더 좋은

form-hiking 2025. 10. 31. 18:38

-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2길 35-8(양유당)
- 2025.10.18~11.16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작업 세계를 소개하는 작은 전시. 건축물, 가구, 그릇 및 조명과 같은 생활 소품, 저서 등을 선보인다. 북촌에 위치한 양유당이라는 한옥에서 전시가 열린다. 전시 공간이 10평 남짓 될까 싶다. 전시 소개 영상에서 작가는 “40년 이상의 일을 요약했다”고 말한다.  


나카무라 요시후미(1948~)는 ‘주택건축가’로 자신을 소개한다. 1981년부터 레밍하우스(lemminghouse)라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건축 설계뿐 아니라 가구 및 생활 소품 디자인,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
  전시 기획 전반을 건축가가 직접 한 것으로 보인다. 전시 안내 리플릿의 작품 소개 문구도 직접 작성했다. 리플릿을 그냥 손에 쥔 채로 전시를 봐서 나중에야 읽어 봤는데, 친근한 어투로 이해하기 쉽게 적어 놓아 전시를 볼 때 같이 봤으면 훨씬 좋았겠다 싶다. 
 

 
개별 전시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다. 시시하거나 격이 떨어져서가 아니라(다 탐나는 것들이다) 건축물도 그렇고 가구나 소품도 그렇고, 유난스러운 것이 없다. 토끼 얼굴 모양을 한 유아용 의자 정도가 특이하다.
전시 동선 마지막에 2개의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해 거주하는 작은 집에서 단출하게 식사하고, 접이식 침대를 펴 잠자리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4분짜리 영상이다. 보면서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이 사람에게는 일상과 작업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실감했다. 좀 엉뚱하게도, 요새 하도 여기저기서 쓰여서 정체가 불분명한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건축가의 간소한 일상을 보고 나니 퍼즐이 한 번에 맞춰지듯 전시에 대한 감상이 정리된다.
○ 전시 제목이 ‘보통이라서 더 좋은’이다. 건축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가 참신하거나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자신은 서민의 일상에 맞춘 주택을 정성스럽게 설계한다면서, 보통이라는 단어에는 ‘흔하다, 평범하다’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다루기 쉽다, 수수하다, 진실되다’와 같은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설명한다. 
모두 그의 작업 세계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들이긴 하다. 설계를 위한 설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지양하고, 일상에 필요한 기능에 충실하며,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것들. 억측을 더해 덧붙이자면, 그는 본질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택의 본질, 일상을 이루는 환경이나 행동의 본질에 집중하고, 그 본질에 필요하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면 미적인 것이든, 기능적인 것이든 깎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삶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원룸 주택의 플랜은 매우 단순해야 합니다. 더구나 기능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주택으로서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거기서 영위되는 생활 또한 간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책을 많이 냈다. 전시장에도 진열되어 있는데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이 8종이나 된다. 한국에는 주로 2010년대 초반에 많이 소개됐고, 출간 종수를 볼 때 반응도 좋았던 것 같다. 전시를 본 뒤에 한 권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위의 문구가 나온다. 예전에 나온 기사들을 봐도 그렇고, 건축가의 메시지가 시종일관 고르다. 


한국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내고 강연도 했는데, 자신의 작업 세계를 선보이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 자리인데, 40여 년에 걸쳐 심지 굳게 쌓아온 세계를 작은 한옥에서 펼친 것도 그답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천천히 봐야 할 전시다. 그의 말대로 새로울 건 없지만 점점 보기 드문 세계다. 
전시는 11월 16일까지. 전시장 내부는 촬영할 수 없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저 · 이서연 역, 《집을, 짓다》, 사이, 2012, p.24
 


레밍하우스 홈페이지와 이번 전시 소개 웹페이지. 단정하고 꼼꼼하게 잘 만들었다.      
전시가 열린 양유당이라는 한옥은 구가도시건축이 개보수 설계를 맡은 곳인데, 이곳과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오래전부터 교류해 온 듯하다. 며칠 전에 리뷰를 적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11일까지 열리는 구가도시건축의 전시도 함께 보면 좋을 듯. 많은 면에서 닮았는데, 조금 결이 다른 부분도 있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궁금하다면 시사인의 2017년 인터뷰 기사를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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