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하이킹

구가도시건축 25주년 건축전_fiction non fiction

form-hiking 2025. 10. 28. 17:13

-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30(舊 구영숙 소아과)
- 2025.10.10~11.11
 
○ 한 건축사무소가 25년간의 활동과 작업 결과물을 정리해 소개하는 전시. 일부 기사에서는 회고전이라는 표현도 썼는데, 그보다는 현재진행형인 프로젝트의 전모와 비전을 소상하게 보여주는 전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주최 측에서는 이번 전시를 ‘건축전’이라고 명명했다. 
○ 건축계에는 문외한이고 구가도시건축(이하 구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검색해 보니 구가를 창립해 이끌고 있는 조정구 건축가가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후술하겠지만 수요답사라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고유한 작업 논리를 다져온 곳이고, 현대적인 한옥 건축 작업으로 건축계에 잘 알려진 곳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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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3개 섹션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섹션은 구가가 2000년 창립 이후 현재까지 진행해 온 수요답사를 다뤘다. 나머지 두 섹션에서는 구가가 설계한 건축물과 지향점을 소개한다. 두 번째 섹션은 주택을, 세 번째 섹션은 좀 더 스케일이 큰 공공시설이나 종교 시설, 지역 아카이빙 프로젝트 등을 다뤘다.
○ 구가는 수요답사라는 이름 아래 정기적으로 서울의 한 지역을 정해 답사를 다녀오고 그 결과를 다양한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 작업을 2000년부터 1,100여 회 이상 이어 왔다고 한다. 한 지역을 여러 차례 다녀오기도 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 전시에는 몇몇 답사지에 대한 소개와 함께 답사 과정에서 작성한 지도, 도면, 사진, 스케치 등 다양한 기록물이 나왔다. 답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역이나 특정 건축물의 모형, 간판과 같은 수집물도 있었다. 한 번 답사를 다녀올 때마다 축적되는 기록물의 양이 상당히 많은 듯했다. 
○ 수요답사는 단순히 리서치 트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가의 설계 과정 전반과 연계된 핵심 프로세스로 보였다. ‘우리 삶의 형상을 찾아서’라는 문구가 이번 전시의 부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구는 구가가 이전에 진행한 전시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급조된 것이 아니라 구가의 근본적인 건축 철학을 담은 문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수요답사는 구가의 구성원들이 ‘삶의 형상’을 탐구해 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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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답사의 결과물. 답사 자체도 고된 일이지만, 답사 결과를 기록하는 작업에도 정말 많은 품을 들였다.

 
○ ‘삶의 형상’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는 모호하기도 한데, 그렇다고 아주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은 아닌 듯했다. 수요답사의 결과물을 보면서 이해한 바로는, 한 지역의 역사와 지리, 해당 지역 주민들의 상호작용,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얽혀서 만들어진 지역의 건축물 및 공간 구조의 특성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것으로 보였다.
○ 수요답사를 통해 얻은 지식이나 통찰, 아이디어는 구가의 설계 과정에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구가의 전반적인 작업 철학이나 논리의 밑바탕이 되는 듯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도 수요답사의 결과물은 첫 번째 섹션뿐만 아니라 구가가 설계한 건축물을 소개하는 다른 섹션 중간중간에도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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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주택 작업을 소개하는 2층 전시. 전시 공간 옆 마당에는 구가의 건축 철학을 담은 파빌리온을 설치해 관람객이 공간을 체험하게 했다.


○ 전시장 기둥과 벽면에 적힌 글 중에 인상적인 문구들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살아 보니 한옥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 티 나지 않는 평온한 건축임을 알았다...무엇보다 마당은 집안으로 들인 자연의 조각으로, 그 마당에 지붕을 덮어 밝은 마루가 만들어지고, 다시 마루를 벽으로 감싸면 포근한 방이 됨을 알았다. '자연-마당-마루-방'으로 이어지며, 거칠고 때론 무서운 자연이 점차 친밀하고 온순한 사람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건축 이전에 삶의 의지가 존재하고 그 삶의 의지가 삶의 형상을 바꿔 가면서 건축을 바꿔가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한옥 같은 집'은 우리가 만든 주제가 아니다. 이것은 건축주들이 가지고 온 것이다. 서로 모르는 여러 건축주들로부터 나는 한옥을 좋아하지만 한옥에 살 자신은 없어요. 그렇지만 한옥 같은 집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주어진 환경과 요구에 맞게 지은 집이 제주의 토산리 주택, 파주의 세 주택, 그리고 전주 주택이다.”
○ 설계 작업에 필요한 논리와 철학을 잘 마련하기 위해 구가가 택한 방법론이 수요답사라고 본다면, 천 회가 넘는 답사를 고집스럽게 이어온 밑바탕에는 일종의 직업윤리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한옥 같은 집’에 대한 언급에서 볼 수 있듯 건축주들의 요구에 따라 전통이나 기존 담론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작업의 방향을 조정해 왔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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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스케일 큰 작업들과 한남동 아카이빙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소개한 3층 전시. 한남동 언덕 모형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하다.


○ 조경가 정영선의 전시를 리뷰한 글에서 “건축과 관련된 전시나 담론에서는 주변 환경이나 자연과의 조화, 공간의 역사·문화적 맥락에 대한 고려를 강조하는 언술이 예외 없이 등장한다....한국 건축 관계자들의 철학이나 담론이 다양하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다른 이야기도 궁금하다"고 썼다. 이번 전시를 보니 건축 작업(조경을 포함한)에 따르는 책임과 무게, 윤리, 실제 작업 과정에 대한 고찰 없이 너무 가볍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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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과정에서 포착된 서울의 독특한 건축물 모형도 눈길을 끌었다. ‘서교365’라 불리는 홍대앞 거리의 건물군은 오래전부터 봐 왔던 곳이라 반가웠다.

 
○ 전시 장소 역시 한국 건축사에서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1936년에 지어진 건물로 박길룡이라는 1세대 건축가의 작품.   
○ 보통 민간 회사나 기관에서 주최하는 전시는 무료인 경우가 많은데 유료 전시이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만 원의 입장료를 받는다고 해도 전시 비용을 충당하지는 못하겠지만, 주최 측에서 공들여 준비한 전시인 만큼 무료로 공개하거나 더 저렴하게 티켓 값을 책정해 콘텐츠의 가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네이버에서 예약하면 할인받을 수 있고, 한 번 티켓을 구매하면 반복해서 관람할 수 있다. 도슨트 프로그램과 토크 행사도 전시 기간 중 꾸준히 열린다(예약 필요).

○ 전시는 11월 11일까지. 
○ 전시장에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전시 리플릿이 비치되어 있었다. 어떤 건축가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구가가 설계한 북촌의 한옥에서 전시가 진행된다고 하길래 구가 전시를 보고 이틀 뒤에 다녀왔다. 리뷰 

인스타그램 @fiction.non.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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