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운데 보탑(寶塔)이 셋 있으니, 그 첫째가 금탑(金塔)이요, 둘째가 은탑(銀塔)이며, 셋째가 수마노탑(瑪瑙塔)이다. 수마노탑은 지키고 보존하여 지금까지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사라져서 보이지 않으니, 이는 산의 영기(靈氣)로 인해 은밀히 감춰진 것인가? 아니면 박복(薄福)한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산에 올라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간혹 보기도 하지만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하니, 가히 신령스럽고 기이하다고 할 만하겠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바로 보일 줄 몰랐다.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오는 산봉우리 중턱에 탑 하나가 섰다. 경내로 들어설수록 탑의 형상이 또렷해진다. 이 절에 방문하는 이 거개가 저 탑을 안다. 거개가 저 탑을 보기 위해 절을 찾는다. 부처의 몸,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알려진 수마노탑이다.





정암사는 정선군 함백산 자락에 있는 절이다. 정선 시내는 물론, 이웃한 태백 시내에서도 제법 떨어진 곳에 있다. 정선과 태백을 잇는 38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2km 남짓 남쪽으로 들어왔다. 근방에 큰 마을도 없는 듯했다. 외딴곳이다. 정선과 태백 일대에는 별다른 유물이나 유적이 없다. 와보면 그럴 만하다고 느낀다.
이쪽은 산세가 짙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인데 험하거나 깎아지르는 건 아니다. 산림의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할까. 산과 나무가 빼곡하다. 예전부터 커다란 촌락이 형성되거나 사람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곳에 삼국시대까지 역사가 올라가는 절이 있다.








정암사는 신라의 승려인 자장이 세운 절로 알려졌다.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진신사리를 받은 자장이 문수보살의 전언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절과 탑을 세웠다고 한다. 수마노탑이라는 독특한 이름도 설화에서 유래했다. 당나라에서 돌아오던 자장이 동해를 건널 때 용왕에게 받은 마노석으로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수마노는 물에서 나온 마노석이란 뜻이다.
실제로 탑을 이룬 석재는 마노석이 아니라 돌로마이트와 석회암이다. 양식적 특성에 비추어 수마노탑의 건립 연대를 신라 시대가 아닌 고려 시대로 보기도 한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진신사리를 정암사에 안치했다는 사실도 당대의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암사와 수마노탑을 둘러싼 전설의 진위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널리 퍼진 것으로 충분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진신사리가 잠든 성지로 믿어 왔다.
정암사를 처음 찾은 이들은 잠시 경내를 배회하다 이내 수마노탑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 분 남짓 속도를 내면 도착하긴 하는데 제법 길이 가파르다. 걸음이 불편한 사람도, 나이가 많은 사람도 모두 느리게나마 오른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쯤 돌계단 위로 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탑은 아니지만, 거대한 탑도 아니다. 육중하다기보다는 날씬하고 상승감이 도드라진다. 모전석탑, 즉 벽돌로 만든 탑(전탑)을 따라 한 석탑이다. 석재를 벽돌 형태로 가공한 뒤 차곡차곡 쌓아 탑을 세웠다. 전체적으로는 연회색과 연갈색이 뒤섞인 양상인데, 탑을 이룬 석재마다 색이 조금씩 다르고 오염된 부분도 있어서 얼룩덜룩하다. 석재와 석재 사이 틈에 군데군데 잡초가 자랐다. 지붕돌 모서리마다 풍경이 달려 짐짓 꾸민 인상이다. 금속 재질의 상륜부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더 그런 인상을 받는다. 많이 노쇠했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한껏 치장한 노인 같다.
고대의 전설이나 상징성이 없는 평범한 탑이었다면 진즉 무너진 채 방치돼 기단부만 남았을 것이다. 워낙 오래된 데다 석탑과 비교해 외부 충격에 약할 수밖에 없는 모전석탑이다. 실제로 탑은 여러 번 무너졌다. 18~19세기에 탑을 중수한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 시기에만 세 차례 중수되었다. 벼락을 맞아 탑이 무너지는가 하면 지진으로 찰간이 뽑혔다. 1972년과 1995년에도 대대적인 보수가 이뤄졌다. 현재 파악되는 중수 이력만 이 정도이니 탑이 세워진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온전한 모습을 유지해 왔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일주문에서부터 일종의 경외감을 안고 산 중턱까지 올랐는데, 낡은 탑은 단정하고 조용하다. 탑 지척에 온 사람들은 숨을 고르고 저마다 할 일을 찾는다. 절하는 사람, 주위를 빙빙 도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이 주변을 채운다. 그런 광경을 보며 맥없이 탑 주위를 서성이다 일주문 쪽을 내려다보는데, 느슨해진 마음이 다시 팽팽하게 당겨진다.

좌우로 펼쳐진 산 능선이 만드는 소실점 위치에 일주문이 있다. 시선이 죽 빨려 들어간다. 뒤로는 이쪽 지방의 밀도 높은 산림이 펼쳐져 다시 부드럽게 시선을 퍼트린다. 치밀하게 설계된 풍경 같다. 안정감을 주면서도 부채꼴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시야가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돌아보면 탑이 있다. 탑이 보는 풍경을 보니 왜 이곳에 탑을 세웠는지 알겠다.
일주문에서부터 탑을 바라보며 올라왔는데, 지금은 조금 전의 자신처럼 이곳을 향해 오는 사람들을 본다. 저들이 지고 오는 마음의 무게를 이 얌전한 탑이 다 버티어낼 만할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들한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탑이 선 곳의 전모를 보고 나니 과연 그럴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탑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행위부터 가쁜 숨을 고르며 단정한 탑과 만나는 일, 탑이 선 자리에서 경이로운 풍경을 응시하는 경험까지 모두 하나의 실로 꿰어져 참배 과정이 완결성을 갖는다. 이날 산을 오른 사람들이 끝에 가서 무엇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서두에 인용한 문구는 18세기 후반 문헌에 수록된 수마노탑과 관련된 설화의 일부인데, 원래 이곳에 세 개의 탑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설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19세기 후반의 기록에도 동일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런데 금대(金臺)와 은대(銀臺)의 두 탑은 감추어져 보이지 않고, 마노대(瑪瑙臺)의 한 탑만이 사람들의 이목에 드러날 뿐이니, (원래 하나만 남은 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그러함을 모르는 것인가?**
설화대로 두 개의 탑이 더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만든 이의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있지도 않은 탑으로 정암사 일대에 신비감을 더하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적어도 수마노탑과 관련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만들었다'라는 점은 사실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은 탑 하나요, 보이지 않는 것은 탑처럼 쌓인 전설의 흔적이다. 금탑이나 은탑은 물론, 자장이 용왕에게 받았다는 마노석도, 자장이 정암사를 세우고 그토록 기다렸다는 문수보살의 자취도 보이지 않는다. 부처의 사리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오래된 탑 하나가 안테나처럼 보이지 않는 전설을 발신하며 계속 사람을 불러 모은다. 신령스럽고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2025년 10월
* 1778년 취암 성우(翠巖 性愚)가 편찬한《江原道㫌善郡太白山淨巖寺事蹟(강원도정선군태백산정암사사적)》에 실린 내용으로 해석문은 김상영, <태백산 정암사의 역사와 사격(寺格)>,《불교와 사회》 13권 2호, 2021, pp.79-80에서 인용했다.
** 1972년 수마노탑 안에서 발견된 5매의 탑지석 중 1874년의 중수 기록이 적힌 제3석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해석문은 한상길, <정선 정암사의 사적기에 대한 고찰> ,《淨土學硏究》 제36집, 2021, pp.61-62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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